본문 바로가기
부자의 책

CS.루이스의 『침묵의 행성 밖에서』

by 생각과기록 2024. 8. 9.
반응형

작가가 누군지 모르고 읽는다면, 단순한 과학 판타지 소설로 여겨질 수 있다. 영화 '아바타'에서 처럼 귀한 광물을 찾기 위해 원주민을 살해하는 인간의 욕망과 자기 행성을 지키려는 원주민의 대결 구도로 비춰질 수 있다. 

하지만 '나니아 연대기'의 작가인 루이스가 신실한 기독교인임을 인식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, 종교적 색채가 짙게 묻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. 

 

지구의 예수같은 존재가 말라칸드라에 존재한다. 그는 바로 오야르사이다. 오야르사는 말라칸드라의 중심이다. 세 종족이 오야르사를 섬기고, 오야르사의 뜻에 따라 말라칸드라에 자기 존재의 역할에 충실한다. 하지만 현재의 지구에는 오야르사 같은 존재가 없다. 인간은 제 멋대로다. 즐거움을 반복하기 위해 정복하고 싸우고 다툰다. 루이스는 만약 말라칸드처럼 오야르사가 존재한다면? 이라는 질문을 던진다. 

 

말라칸드라의 세 종족이 어떤 모습일까? 상상하며 유추해보며 책을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다. 특히 흐르사와 랜섬이 처음 조우하는 장면, 랜섬이 '돌아와'라고 외치던 그 장면, 남자와 여자의 첫 만남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작가의 표현처럼, 그 장면 속에 내 상상력을 맡겨본다. 

 

랜섬과 흐르스의 질문과 답 속에서 인간의 욕망의 헛됨을 엿보게 된다. 흐르스는 랜섬에게 질문한다. "종일 저녁을 먹고 싶어하거나, 잠잔 후에도 잠을 자고 싶냐고?" "즐거움을 왜 계속 원하느냐?"고. 즐거움은 기억하기 위해서 일뿐이라는 흐르스의 말. 즐거움을 시와 지혜로 만든다는 흐르스의 말. '즐거움'이 '욕망'이라고 표현한다면, 우리 인간처럼 끊임없이 욕망하는 존재가 있을까? "하루나 한해가 다시 오기를 늘 바란다면 어떻게 견디고 살면서 세월이 흐르게 할 수 있겠어요?. 매일의 삶을 기대와 추억으로 채우고 지금 하루하루가 바로 의미 있는 그 날이라는 걸 모른다면 어쩌겠어요?" 

 

끊임없는 바램을 위해 평생을 욕망하는 인간. 그 욕망을 내려놓을 때 흐르스처럼 진짜 만족하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?

 

죽음! 말라칸드라의 종족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. 죽음은 그저 자연스러운 수순이자 질서일 뿐이다. 신체를 분해하는 존재는 바로 오야르사다. 말라칸드라의 종족들은 오야르사의 안내로 분해되고 흩어진다. 죽음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을까? 어려운 일이다. 종교와 신앙이 있다면! 자연스러운 죽음을 조우할 수 있을까? 작가의 의도일까?  

 

"우리가 독자 중 1%만이라도 우주라는 개념을 천국이라는 개념으로 바꾸게 할 수 있다면, 발판은 마련하는 셈일까요?" 232페이지의 문장에서, 독실한 작가의 종교적 사상이 진하게 느껴진다. 우주는 어떤가? 어둡고 두려운 존재다. 랜섬이 눈을 떴을 때, 어둠 속 철판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 처럼, 아득히 먼, 두렵고, 불안한 존재다. 천국을 향하려면 결국 우리는 죽어야 한다. '죽음' 생각만 해도 두렵다. 그 죽음의 색채와 우주의 색채가 비슷하지 않은가? 하지만 막상 우주에 들어서면 그 황홀한 빛의 색채 향연에 감동하게 된다. 어둠, 불안 이면에 있는 평온하고 안온한 공간 역시 우주이자 죽음 이후 천국이다. 

 

죽음을 너머 천국에 도달하기 위해, 우주로 향하려면 길이 있어야 한다. 바로 그 길이 신앙과 종교라고 작가 루이스는 이야기하는 것 같다.  

 

반응형

댓글